따스한 국물, 나에게 건네는 돌봄
최근 배탈이 자주난다
장기 복용 중인 약물의 영향인지, 장이 전보다 예민해진 것인지
조금만 자극적이거나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난다.
배탈이 난 날은 몸에 힘이 빠져
식사를 챙기는 것도 쉽지 않다.
혼자서 매일 나를 위해 요리하는 것도
어느 날은 문득 쉬고 싶어진다.
그래서 가끔은 배달음식을 시킨다.
배달음식은 처음 한 입은 맛있다.
하지만 다 먹고 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채워졌다는 느낌은 남지 않는다.
나를 위해 고르는 식재료
현재 나는 생활비가 넉넉한 편은 아니다.
소비와 지출을 꼼꼼히 정리하지만
요즘은 예산을 조금씩 넘기는 달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이 아픈 이후로 양보하지 않기로 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식재료다.
유기농 식재료를 구매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큰 차이가 있을까 싶었지만,
직접 먹어보니
천천히 자라며 농축된 맛과 향이 참 좋더라.
무엇보다도
내가 나를 위해 유기농 식재료를 골라서 먹는다는 행위에서,
'나 스스로를 소중하게 잘 챙겨준다.'라는 느낌을
매번 느낄 수 있다.
나 자신에게 얼마나 야박했는지
나는 늘 다른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애써왔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외면받지 않을지를 생각하는 것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익혀온 나의 생존방식이었다.
그 과정에서
정작 나 자신은 늘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그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타인의 미소와 친절을 얻기 위해,
그것으로부터 내 존재의 정당성을 찾기 위해
얼마나 자주 나의 감정을 무시했는지,
내 욕구를 채우기보다
남을 기쁘게 하는 일에 얼마나 익숙해졌는지를
이제서야 돌아보게 된다.
따스한 사골 국물
오늘은 유기농 친환경 식재료만으로 음식을 만들었다.
배탈로 지친 장을 생각해
속이 편하면서도 영양이 되는 메뉴를 고르다
평소엔 잘 구매하지 않던 사골 육수를 선택했다.
따스한 사골 육수에
얇게 썬 감자와 표고 버섯도 넣어 끓이고,
마지막에 샤브샤브용 소고기를 몇 점과
잘게 썬 대파를 올렸다.
소금 간은 따로 하지 않았고,
밥도 곁들이지 않고 그대로 먹었다.
핸드폰도, 티비도 안보고,
오로지 음식만을 바라보며,
표고 향이 퍼지는 순간,
국물의 온기,
부드러운 감자의 식감,
고소하게 번지는 소고기의 육즙,
입안을 개운하게 정리해주는 대파를
천천히 느끼며 먹었다.
채워지는 감각
최근 이렇게 만족스럽게 식사한 적이 있었나 싶다.
먹는 동안에도,
다 먹고 난 뒤에도
감탄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배달음식으로는 채워지지 않던 헛헛함이,
단 몇 가지 재료로 만든 이 한 그릇에서
어떻게 이렇게 충만하게 채워질 수 있는 걸까?
나를 위해 고른 유기농 식재료.
내 몸을 배려해 선택한 부드럽고 따스한 메뉴,
나를 돌보기 위해 조리하는 시간,
완성된 음식을 눈 앞에 놓고 감상하면서
하나하나 감각을 느끼는 순간들.
이 사소한 모든 것들이
'내가 나에게 주는 돌봄'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온몸에 퍼지는 온기 속에서
나는 마치
'누군가가 나를 돌보아주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아,
내가 이제까지 원했던 게 바로 이런 느낌이었구나.
그토록 외부 사람들을 통해 채우려했던
애정과 보살핌의 감각이
나를 위한 작은 행동들로 채워지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에 다다르자 울컥 눈물이 나려 했다.
나는 왜 이제까지 나 자신을 따스하게 대하지 못했을까.......
타인에게는 그토록
관대하고
칭찬을 하고
선물을 하고
시간을 들이고
장점만을 보려고 노력하면서,
정작 나 자신에게는 왜 그렇게 인색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