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나’를 선택하기까지

 

인생을 바라보던 가치관 리셋

나는 어릴 때에 궁금한 것을 알려주는 좋은 어른이 주위에 없었다.
나는 기본 천성이 궁금한 것도 호기심도 많은 편이지만, 무언가를 물어봤을 때에 그 궁금증을 존중받거나 상세히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형제도 없고 외동이었으며, 어린 시절은 가정환경 때문에 위축되어서 인간관계도 넓지 않고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답을 찾지 못한 나는 , 타인을 통해서 삶의 기준을 만들어갔다.
내 안의 개인적인 욕구나 생각은 가치없는 것이라 여겼으며, 바깥 세상 혹은 잘나 보이는 사람들의 삶이 가장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늘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어떤 생각으로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해 했으며, 인생에 정답이 있다면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을 보면, 뭔가 대단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걸 따라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주위에서 말하는 가치있는 것을 쫓아다녔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었다. 있지도 않은 외부의 기준에 맞추어 살다보니, 내 안의 욕구는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나는 살아있어도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이대로 인생이 계속 이어진다면, 그냥 지금 죽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너무나도 지루하고 힘든 날들이었다. 방바닥에 누워 일어날 힘도 없는 순간, 죽기 직전이 이런 상태일까 싶었다. 힘도 없고 일어나지도 못하고 아무런 생각도 의욕도 없는 상태. 그렇게 누워서 ‘나는 이 삶에서 무엇이 정말 하고 싶었나?’를 생각해 보았다.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내 모습이었다. 수많은 관객들이 나를 바라봐주고, 그 앞에서 자유롭게 노래하는 모습, 사람들의 환호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정말 이상한 느낌이었다. 이대로 죽어도 괜찮겠다 싶은 순간에,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이 떠오르는 느낌. 살아갈 의욕도 일어날 힘도 없는 상태에서, 아직 마음속에 꺼지지 않은 작은 불빛을 찾은 느낌.


모아 놓은 돈도 별로 없었지만, 죽기 전에 그 돈은 다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돈을 쓰고, 그래도 죽고 싶으면 그때 죽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밴드의 라이브를 보러 해외 여행을 가고, 그 순간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전하고 싶은 마음을 전하고, 그러고 나니 조금은 다시 살고 싶어졌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살아가는 상상을 하니, 삶이 조금 재미있어질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앞으로의 계획을 정비했다. 그러나 그 계획을 실행시킬 기반이 없었다. 계획이 아니라 삶을 살아갈 장소마저 없었다. 


살아갈 집이 없었고, 생활비가 없었다. 가족관계는 모두 끊겼고, 나는 병이 생겼다.


지금까지의 삶은 다 잊고, 한 번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아보자고 결심을 했다.
그랬더니, 내 몸이 나를 공격해 머리카락이 완전히 다 빠지는 자가면역질환에 걸렸다. 새로 태어난 것처럼 살겠다고는 생각했지만, 내 머리카락 상태마저 신생아처럼 하나도 없어지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하면서 허탈한 웃음이 났다. 지루한 삶을 원망하며 지금 당장 죽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던 내가, 바닥에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덩어리를 보며, ‘아, 삶이라는 게 정말 지금 당장 내가 원하지 않아도 끝날 수 있는 것이구나.’ 라는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오늘 잠이 들면 내일은 다시 눈을 뜰 수 있는 것인지 불안했다.


내가 병에 걸려도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철저하게 혼자 남겨졌다. 더이상 이대로는 견딜 수 없다는 생각에 힘들었다. 마음 약한 소리를 다른 사람에게 해 본적도 없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내 삶의 모든 것을 털어놓으며 이야기 해보기도 했다. 괴로운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이러다 정신이 이상해지면 내가 나 자신에게 또 무슨 짓을 해버릴지 몰라 무서웠다. 누군가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대고 싶었다. 누군가와 사소한 말 한마디라도 따스하게 주고받고 싶었다. 그저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사실이, 불필요한 일은 아니라는 믿음을 갖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필요한 사람이고 싶었다. 작은 관심과 배려에도 너무나 기뻤다. 내 삶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마음이 움직였다.


나는 외부세계에 너무 의존했다.
나의 가치를 바깥 세상과 사람들에서 찾으려고 했다. 그들이 내 존재의 의미가 되어주기를 바랐다.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나를 낳아준 부모조차도.


가족으로부터 받을 수 없는 존중과 사랑을 세상 어디에서 받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나는 어딘가에 그런 사람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내 마음을 다해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들의 인정이었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내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냥 가볍게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조금이라도 불편한 느낌을 받으면 바로 갖다 버릴 수 있는, 그런 장난감 같은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나의 마음은 너무 진지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식으로밖에 인간관계를 맺지 못한다.
사람에게 관심이 생기면 깊이 있게 알아가고 싶고 친해지고 싶고, 내 삶의 한 부분으로 두고 싶어진다. 그래서, 그들이 없어졌을 때에 내 삶이 무너지는 것 같은 상실감을 느낀다.


나는 이제 더이상 바깥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 주기만을 넋놓고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이 떠나도 가장 마지막까지 내 곁에 남아 있는 존재는 바로 ‘나’이다. 


나는 나와 친하게 지내려고 한다.
나의 생각과 욕망을 들어주고 존중해 주려 한다. 이제는 인생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정답이 내 인생에 들어맞을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에게는 나만의 삶이 있고, 내가 원하는 가치가 있고, 인생을 살아가는 나만의 방식은 ‘나 자신만이’ 찾을 수 있다.


누군가가 보살펴 주기를 바라면서 타인에게 애정을 쏟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을 나 스스로 보살피며,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애정을 쏟아주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아직 마음 한 켠에는 이런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가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버릴수가 없다. 


생각과 마음과 가치관이 맞는 사람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