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흘려 보내는 힘
잠이 드는 순간의 환청
깨어있음과 잠듦의 경계에서 가끔 환청이 들릴 때가 있다. 예전에는 가위눌림 현상으로 자주 나타났었는데, 요즘은 가끔 환청을 듣는다. 어제는 오랜만에 푹 자려고 핸드폰도 멀리 치워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들려고 하는데, 어머니가 치매이신 외할머니를 향해서 '정신 좀 차리라고!'하면서 큰 소리로 화를 내면서 분노를 쏟아내는 소리가 들렸다. 외할머니의 머리를 주먹으로 때리고 몸을 쥐어 박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지나니 수 많은 사람의 분노와 짜증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나는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되지 않아서 일단 일어나서 상황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고 상황을 중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억지로 억지로 잠에서 깨어났다. 주변은 캄캄하고 조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혼자 살고 있다. 자고 있는데 누가 다투거나 시끄럽게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갑자기 무서워서 눈물이 났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그저 핸드폰을 손에 쥐고 그걸 위로 삼아 다시 잠을 청했다. 내가 들은 그 소리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아주 어린 시절 부모는 내가 자고 있는 동안 식칼을 들고 서로 죽이겠다고 소리를 지르면서 싸웠다. 나는 불안하고 무서웠다.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눈 앞에 보이는 듯 하다. 그 싸움의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다가가는 것이 어렵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과도 이야기를 잘 한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에 주저함은 없다. 가벼운 대화도 잘 하고 금방 친밀하게 분위기를 풀어간다. 하지만 더 깊게 친해지지는 못한다. 내 마음을 여는 것이 마치 약점을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있다. 내가 호감을 보이면 그걸 약점 잡아서 나를 협박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있다. 누군가를 마음에 품는 것에 대해서는 내 생명을 위협 받는 듯한 공포를 느낀다. 두렵고 무섭다. 깊게 친해지면 반드시 상처를 받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왜 그럴까?
어린 나는 무의식에 세상과 사람은 믿을 수 없고, 나를 위협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되어 불편함을 울음으로 표현하면 뺨을 맞고 기절해야 했다. 아버지는 매사에 엄격하고 체벌을 일삼았으며, 어머니는 나를 방치하고 외출을 자주 했다. 두 사람은 한 밤 중에 자주 큰 소리로 싸웠다. 어머니는 나에게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갔고,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 갑자기 내 앞에서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을 배웠다.
두 사람이 이혼하는 과정에, '아이는 네가 데려가라.'면서 서로 나를 미루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나는 살기 위해서 두 사람의 비위를 맞춰야 했고, 어떤 상황에서도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떼를 쓰거나 투정을 부릴 수는 없었다. 그때가 만5세쯤이었다. 이러한 경험들이 내 몸과 마음에 뿌리 깊게 박혀있다. 사회 생활도 인간관계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과 친해지는 것은 무서운 것이고, 언제 나에게 상처를 줄 지 모르며, 좋아하게 되면 갑자기 떠나버릴 거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나의 인간관계
나는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었고, 그렇기 때문에 조그마한 자극에도 많이 아프다. 나는 내 주변사람들에게 그런 아픔을 주고 싶지 않아서, 지나치게 조심하고 신경을 많이 썼었다. 그리고 유교사상을 기반으로한 교육을 받다보니, 부모는 무조건 공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부모를 향해 화를 내거나 분노를 느끼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늘 마음 한 켠에 죄책감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감정과 의견은 무시하고 상처를 주는 이들에게까지 내 에너지를 쏟아가며, 예의를 갖추고 존중할 필요는 없다. 물론 그들과 똑같이 행동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살고 싶지 않다. 나는 그들을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불만스럽고 불쾌하기는 하지만, 그런 감정 속에 빠져 살고 싶지 않다. 그만큼 내가 살아있는 이 시간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사고방식과 행동과 대화의 세계가 다른 이들에게 나는 무슨 해명을 하더라도 이질적인 존재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이해 받지 못하는 경험은 마음이 많이 아프다.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항상 그것이 문제였다. 익숙한 얼굴, 오랜기간 봐왔던 사람, 그들에 대한 반가움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내 주변에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들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들이 반가웠다. 하지만 그들이 나의 의견을 지지해준다거나 응원해주기는 커녕, 내가 힘들 때엔 더더욱 나락으로 끌어내리고 비난하고 질책하고 비꼬고 깎아내리기만 한다. 나의 가족이라는 사람들이 그렇다. 나는 이제 그것에서 벗어나려 한다.
삶의 주도권 찾기
환청을 통한 경험이든, 아니면 생활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든 간에, 과거의 불쾌했던 경험이 떠오른다는 것은 나에게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고 흘려보낼 힘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럴 힘이 없을 때에는 떠올리려고 해도 전혀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떠올라도 그 감정을 스스로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쾌한 기억이 떠오르고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잠을 못 이루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과거의 기억과 감정이 나의 발목을 붙들고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너무 두렵고 무서워서 혼자서 울기도 한다. 나를 가두는 관념들이 너무 싫으면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발을 내 딛는데에 너무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 너무 싫고 두렵고 무섭고 외면하고 싶고 무시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다. 하지만 이대로 피하기만 한다면 내 삶은 전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 생각 없는 이기적인 이들의 행동으로 인해 내 인생이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그래서 혼자서 울면서 용기를 내 본다. 정체 되어있기는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