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처음 경험하는 자가면역질환
자가면역질환으로 한 달도 안되어서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 스테로이드 주사를 두피에 맞아도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은 줄어들지 않았다. 매일매일 스치기만 해도 후두둑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지만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단순한 탈모가 아니라 원형탈모 중에서도 극히 드문 경우라고 했다. 너무 빠르게 모든 머리카락이 빠졌기 때문이다. 어깨 밑으로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을 아이롱으로 돌돌 말고 외출하는 걸 즐겼었는데, 지금은 빗을 머리카락도 없다.
인터넷에서 자가면역질환을 검색했다. 간단히 말해서, T세포인가 하는 세포가 정신 못 차리고 헷갈려서 원래는 내 몸을 지켜야 하는 녀석이 반대로 내 몸을 공격하고 있는 거라고 했다. 나의 경우에는 두피의 모낭을 공격하고 있었고, 그게 시간이 지나면서 눈썹과 속눈썹도 듬성듬성해졌다. 전신으로 퍼지려는 징조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자가면역질환은 탈모 뿐만 아니라 다른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는 듯 했다. 여러 정보를 찾아보면서 나는 차라리 머리카락이라 그나마 다행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면역억제제 복용 중 나타난 증상들
사이클로스포린이라는 면역억제제를 복용 중이다. 복용 첫 날부터 빠지는 머리카락 수가 줄어들었다. 그런데, 부작용이랄까 면역이 낮아지면서 나타나는 증세랄까 피부가 굉장히 민감하고 약해진 상태이다. 귀이개로 귓바퀴를 좀 긁었다고 상처가 났는지 접촉성 피부염처럼 벌겋게 달아오르고 가렵고 딱딱한 각질이 생기고 하는 등 고생을 했다. 다행인 건 더 심하게 번지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가라 앉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2주 정도 지났을까. 귀의 증세가 좀 괜찮아지나 싶더니, 이제는 목이나 손에 울긋불긋하게 뭐가 생기는 것이었다. 심하지 않아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 일찍 긴팔의 바람막이를 입고 오랜만에 산책을 하고 오니 양팔 전체에 울긋불긋하게 두드러기 같은 게 생겼다. 땀을 좀 흘렸는데,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피부가 난리가 나서 서둘러 찬물로 양팔을 씻고 반팔 옷을 입은 채로 휴식을 취했다. 그랬더니 1시간이 좀 지나니 가라앉았다. 이것도 더 심해지지는 않아서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나를 소중하게 돌보기
투병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는 중이라서 당연히 면역력이 낮아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하는 것이 좋고, 외출할 때는 꼭 마스크를 한다. 그리고 혹시나 감염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를 한다. 그러다 보니 행동이나 생활이 조심스러워졌다. 예전에는 신경을 쓰지도 않았을 일들을 하나하나 신경 쓰고, 상처가 나지 않도록 조심한다.
예를 들어, 탈모가 생긴 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했던 맨발 걷기를 중단했다. 발에 상처가 나거나 세균 감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손에 생긴 거스러미를 손으로 뜯지 않게 되었다. 상처가 나면 잘 아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모를 하지 않게 되었다. 제모 중에 상처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샤워는 너무 뜨겁지 않은 미지근한 물로 한다. 양팔의 두드러기와 귀와 두피에 자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디클렌저와 샴푸, 바디로션은 유아용으로 바꿨다. 성인용이 피부에 자극이 되기 때문이다. 음식 재료는 꼭 익혀 먹고, 회처럼 날 것은 피한다.
이처럼 면역억제제를 복용하기 전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도 않던 생활의 작은 부분들까지 생각하고 살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마치 아이를 보살피듯이 나 자신이 어디 상처가 나지는 않을까. 혹여 감염되지는 않을까 신경을 많이 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많은 부작용 중에 우울이 찾아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평소에도 감정이 굉장히 섬세하고 우울을 느끼기 쉬운데, 그나마 감정적 흔들림이 깊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다행이다. 그리고 어찌되었건 고립의 시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스스로도 지금은 모든 자극에서 벗어나 고립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던 터라. 이것도 어쩌면 나중에 돌아보면 좋은 기회였다고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흔들리는 감정
그렇다고는 하지만, 지금 처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을 하려고 갖다 붙이니까, 그나마 다행이다라고 하면서 스스로를 달래는 것이고, 솔직하게는 힘들다. 무엇이 힘드냐면, 원래도 체력이 별로 안좋은데 더 빨리 체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몸이 컨디션이 괜찮을 때에는 정신적인 면도 그나마 버틸 수 있지만, 체력이 고갈되면 그 불쾌한 감정은 말로 표현이 안 된다. 마치 당장이라도 내가 죽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그럴 때에는 눈을 감고 조금 낮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해주면 1~2시간 뒤에는 다시 평소대로 돌아오긴 한다. 하지만 삶에서 자주 느껴서 좋을 감정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보다도 더욱 나의 감정과 몸의 상태를 민감하게 체크하고 그때그때 대처를 하면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