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지 않은 세상에 관하여
세상은 아름답지 않다
회의적인 입장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무엇을 아름다움이라 정의하느냐에 달라지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통상적으로 아름다움이라 부르는 것으로 의미를 한정하여 이야기 하고 싶다.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인정 할 때, 나만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다. 세상이, 사람이 마냥 친절하고 아름답다고만 생각할 때에는 기대하는 것이 많아진다. 내가 아닌 외부가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이상적인 기준을 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것에서 실망하게 되고 속이 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들로만 채워져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외부적인 것들에 기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기준으로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을 찾아나가게 된다. 나는 이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아니,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나는 이제까지 사람이라면 어떠해야 하고, 부모라면 어떠해야 하고, 직장 상사라면 어떠해야 하고, 이상적인 세상은 어떠해야 한다는 등 외부세계를 향한 완벽하고 이상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작은 것 하나에도 크게 실망하고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지는 않다
나는 사람을 대할 때에 너무 상대방을 좋게만 생각했다. 모든 사람을 나보다 '좋은' 사람으로 생각했고, 어떤 사람이라도 상대방의 '좋은' 점만을 보려고 했다. 나는 내가 순수하게 진심으로 대하면 그것이 상대방에게 반드시 전달된다는 믿음을 갖고 살았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인간관계를 하면 할수록 그렇지 않은 상황을 너무 많이 경험했다. 내가 진심으로 아무런 불순한 마음 없이 다가간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은 나를 시기, 질투하는 경우도 있고, 내 뜻과는 다르게 크게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서로 대화가 잘 이루어지는 경우라면 오해를 대화로 풀어나가고 서로를 알아가는 기회로 삼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에게는 오해를 설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부정적인 사고와 감정이 습관화 되어 있는 사람은, 내가 그런 의도가 전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왜곡해서 나의 말과 행동을 해석하고는 했다. 그것이 아주 먼 타인이거나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이거나 할 것 없이 말이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반 이상은 나를 오해할 수도 있구나라고 이제서야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모든 오해들을 풀고 싶었지만, 이제는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내쪽에서도 해명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해명의 기회조차 주지도 않고, 이야기를 들으려고 조차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해 봐야 더 큰 오해를 낳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아름답다
그렇게 여러 경험들을 하면서 실망도 하고 마음에 상처도 받고 하면서 오히려 나는 내 곁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더 잘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만의 아름다운 세상을 찾고 만들고 싶어졌다. 외부 세상이 어떤 모습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믿고 있는 것, 믿고 싶은 것은,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다는 것이다. 나를 아프게 하는 것과는 아쉽게도 거리를 두고 멀리하겠지만,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내 곁에 두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진정 기쁜 때는 언제인지를 찾고, 나에게 그런 아름답고 따스한 상황을 만들어주고 싶어졌다.
이제까지는 '왜 내가 처한 세상은 따스하지 않은 거야?' 라고 생각하며 절망만 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나는 이런 상황을 따스하다고 느껴.', '나는 이런 상황에 기쁘고 즐거워.', '그러니까 내가 내 세상을 기쁘고 즐거운 것으로 채워갈 거야.'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직은 누가 보기에 내 세상이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런 것 조차도 신경쓸 거리가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