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늘 나를 불편하게 하는 환경에 머물렀을까

나는 왜 늘 나를 불편하게 하는 환경에 머물렀을까


요즘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왜 늘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


어릴 때부터 그랬다.

지긋지긋한 가정환경 속에 있으면서도

그곳을 떠나기보다는

차라리 방 안에 숨어 있는 쪽을 선택했다.


밖으로 나가는 건 더 위험하게 느껴졌고,

가만히 버티는 쪽이 덜 아플 것 같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용기가 없어서도

의지가 약해서도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그 환경 안에서 살아남는 법만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관계를 놓지 못했던 이유


비슷한 패턴은 인간관계에서도 반복됐다.


갈등이 있어도,

불편해도,

상처를 받아도

나는 관계를 쉽게 놓지 못했다.


말을 하지 않거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선택을 하면서까지

그 곁에 머물고 싶어 했다.


너무 외로울 때는

정말 싫은 사람과도 함께 지낸 적이 있다.

외로운 것보다는

그 편이 낫다고 믿었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사람 자체를 붙잡았던 게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연결이 사라진 뒤에 남는 것


나는 혼자였고,

외로웠고,

누군가 나를 좋게 봐준다는 감각이 필요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 많은 마음을 쏟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관계들 속에서 마음을 다쳤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때마다

문제는 늘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지금은 달라졌다


지금의 나는 예전과 다르다.


이제는

나를 떠난 사람과

다시 잘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에게서 멀어진 사람을

굳이 붙잡고 싶지도 않다.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알아봤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고,

기분만 더 상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안다.



결국 문제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제야 조금 분명해진 게 있다.


문제는

내 곁에 누가 있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떠난 뒤에도

내가 ‘나로서 혼자’

잘 지낼 수 있는가였다.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나를 불편한 환경에 계속 밀어 넣었던 시간들.


이제는 그 패턴에서

한 발짝 물러나

다른 선택을 연습하고 있다.



나를 어디에 둘 것인가


나는 나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

어떤 환경에 나를 노출시키는 게 맞을까.


사람보다 먼저

환경을 선택해야 한다는 걸

이제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혼자 있어도 무너지지 않는 환경.

누군가 떠나도

나 자신을 잃지 않아도 되는 자리.


아직 완벽한 답은 없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아무 곳에나

나를 던지지는 않으려 한다.



마무리하며


나는 여전히 외롭고,

여전히 흔들린다.


그럼에도 이제는

나를 상하게 하는 곳에서

무조건 버티지 않기로 했다.


그 선택 하나만으로도

지금의 나는

이전과는 다른 자리에 서 있다.